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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어떤 아이들은 그 짧은 생 동안
고통만 알다 가야 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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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온 다섯 아이와 떠돌이 개 한 마리가 전하는
아프지만 값진, 간절하고도 용기 있는 목소리
《아침을 볼 때마다 당신을 떠올릴 거야》에서 안락사가 합법화된 근미래를 배경으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진정 안락한 삶'은 무엇인가, 라는 묵직한 화두를 던졌던 조수경의 두 번째 장편소설. 아동학대 사건이 연이어 터지지만, 법이 바뀌는 속도는 느리고 적절한 방지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통렬히 꼬집는다. 1부는 사각지대에 놓인 채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이야기, 2부는 학대당하는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의 이야기다. ‘평택 아동 살해 암매장 사건’을 계기로 쓰인 이 소설은, 아이들이 학대당하다 목숨을 잃고 사라진 뒤에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는 무엇일지 묻는다. 소설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아이를 위해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온전한 이름을 얻는데, 이는 우리 모두 아이들의 죽음 앞에 떳떳할 수 없으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음을 일깨운다. 우리가 소설 속 ‘김 모 씨’나 ‘최 모 씨’가 아닌 ‘신수연’과 ‘오영준’이기를 바란다.
“어떤 아이들에게 집은 무덤이었다.”
가장 안전하고 아늑해야 할 공간에서
사랑이 아닌 체념을 배우는 아이들
‘양천 아동학대 사망 사건’ 이후 2021년 2월 ‘아동학대범죄처벌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아동학대 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는 높아졌으나,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아이에게 폭력을 가하는 어른과 이를 방관하는 어른은 여전히 존재한다. 보건복지부의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건수는 대략 2018년 2만 5천 건, 2019년 3만 건, 2020년 3만 1000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정서학대와 신체학대 그리고 방임이 높은 비율을 차지하며 두 가지 이상의 학대가 동시에 벌어진 경우가 가장 많았다. 신고 접수된 사례만 분석한 자료이므로 아동학대 실태는 더욱 심각하리라 예상된다. 이를 반영하듯 《그들이 사라진 뒤에》는 같은 동네에서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유나, 요미, 지유의 사례를 들여다본다. 유나는 부모의 폭력으로 언니 한나를 잃고 학교에도 가지 못한 채 다용도실에 갇혀 수돗물로 하루하루를 연명한다. 요미는 유아일 때 유튜버인 아빠에게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당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철저히 방치되고, 16개월 아기인 지유는 엄마의 방임으로 점점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않게 된다. 아동보호 체계가 발 빠르게 작동하지 않는 사회에서, 그들은 영유아 불법 입양 및 장기 매매 현장에서 탈출한 다른 아이의 도움으로 서로를 돌보는 사이가 된다.
“문은 잠겨 있었다. 동시에 문은 열려 있었다.”
어른들의 사소한 무관심이 빚어낸 참극
《그들이 사라진 뒤에》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대부분 이름이 없다. 그들은 아동 살해 사건이 벌어진 집 옆집에 살지만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 이상한 낌새를 모른 척한 이웃(김 모 씨), 부모의 지속적인 학대에 노출된 아이를 3개월간 만나고도 신고할 엄두를 내지 못한 어린이집 선생님(정 선생), 집을 나와 길거리를 떠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발견했는데 무심코 지나쳐버린 목격자(최 모 씨)이며, 아동학대 문제를 알게 모르게 외면해온 우리의 모습을 빼닮았다. 아이의 비참한 죽음은 쉽게 공분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만큼 빨리 잊히고 내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퍼진다. 이 작품은 아이를 돕지 못했다는 뒤늦은 죄책감과 찝찝함만으론 학대와 죽음을 멈출 수 없음을 말해준다.
《그들이 사라진 뒤에》는 또한 치밀한 자료 조사에 힘입은 작품으로, 열악한 근무 환경 탓에 아이들의 생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만 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유 팀장)의 무기력한 고백을 들려준다. 이를 통해 인력 부족으로 상담원 한 사람당 80건에 달하는 사례를 담당해야 하는 현실을 비판한다. 상담원들이 “모든 아이를 같은 비중으로 챙기기란 사실 불가능”하며 “덜 위험에 처한 아이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마는 것이다. 유 팀장의 후배였던 상담원 J는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졌다면 그건 “어른이 아닌 죽은 아이들” 덕분이라고 통탄한다. 아이들의 죽음을 돌이킬 순 없으니,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각자의 영역에서 관심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이를 학대하는 집의 현관문은 언제나 잠겨 있지만, 동시에 아주 조금 열려 있기도 하다.
“오늘도 나는 기다리고 있어요. 나, 여기 있어요.”
아이들의 기다림이 길지 않길 바라며
편의점에서 일하며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영준은, 편의점에 찾아오는 아이들을 알뜰히 챙기는 인물이다. 그는 유나, 요미, 지유를 비롯한 거리의 아이들을 구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데, 그가 특별히 선량하거나 정의로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목격한 장면을 어떤 이유로든 잊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아동학대 피해자인 언니에 대한 기억을 되찾은 수연은, 언니의 시신을 찾아보기로 다짐하면서 그 전에 지금 살아 있는 아이를 먼저 찾아 나선다. 혼자서는 두렵기도 하고 무작정 아이의 행방을 쫓는 일에 확신을 느끼기도 어렵지만, 사라진 아이에게 마음을 쓰는 영준과 힘을 합쳐 아이들의 거처를 알아내고자 한다. 이는 사소한 무관심이 비극을 야기하는 반면, 사소한 관심이 모인다면 비극을 막을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이 사라진 뒤에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무엇일까. 《그들이 사라진 뒤에》는 바로 학대가 끝나길 기다리는 아이의 편에 서는 것, 함께할 사람을 찾는 것, 늦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지금도 외치고 있다. 나, 여기 있다고.
가장 여린 생명들이 보호받는 세상을 꿈꿉니다. 끊이지 않는 아픈 뉴스들에 가슴이 자주 무너져 내리지만, 그럼에도 각자의 자리에서 작은 마음을 보태는 이들이 있어 다시 단단한 걸음을 내딛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주변을 둘러본다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여전히 구조를 기다리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이들의 기다림이 길지 않기를 바랍니다. _작가의 말에서